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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바그너 시리즈 1

클래식뒷담화

by classictalk 2020. 4. 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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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바그너 시리즈 1

- 히틀러가 사랑한 바그너 - 바그너의 반 유대주의적 성향

 

  1. 히틀러가 사랑한 바그너 - 바그너의 반 유대주의적 성향 @
  2. 히틀러가 사용한 바그너의 음악
  3. 이스라엘에서는 들을 수 없는 음악

세계 2차 대전을 일으킨 나치의 수장이자 유대인 600만명을 죽인 희대의 학살자,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04.20 - 1945.04.30)가 대중을 휘두르고 마음을 사로잡는 과정의 중심에는 예술이 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예술을 사랑한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스스로를 예술가이자 통치자라고 말했죠.

 

히틀러가 예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열 여섯살로 추정되는데, 그는 이때부터 그림을 그리거나, 오페라 극장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는 유명한 무대 연출가 알프레트 롤러의 팀에 들어가 오페라 무대 설치 보조로 일하기도 했죠.

 

히틀러는 특히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05.22 - 1883.02.13)를 좋아했는데,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40회 이상 관람했다고 합니다. 

 

왜 히틀러는 바그너의 음악에 열광했을까요?

 

히틀러의 말을 빌려 표현하면, 

“인간의 감정을 뒤 흔들고 독일인의 위대함을 드러내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민족의 결속력을 다질 수 있는 음악”이, 바그너의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히틀러와 바그너의 “반 유대주의”라는 연결고리 때문이었습니다. 

 

바그너는 1850년에 “칼 프라이게당케’(Karl Freigedanke)”라는 가명으로 “음악에서의 유대주의”(Das Judentum in der Musik)”라는 글을 발표합니다. 유대인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표출한 이 글은 1869년에 바그너의 실명으로 개정되어 발표되는데, 이 글은 “근대적 반 유대주의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죠.

 

 

“유대인은 다른 민족과 다르다. 자신들의 고유의 언어가 없고, 영토가 없으며, 고유의 국가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이방인이고 국외자일 수밖에 없다. 또한 언어는 ‘개인’이 아닌 ‘역사적 공동체’의 작품인데, 유대인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역사적 언어발전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그 나라의 언어를 “언제나 외국인으로서” 말하고 있고, 이제까지 모든 시기동안 그래왔다. 유대인은 단지 언어를 따라하고 예술을 모방할 뿐이며, “정말로 말하듯이 시를 짓거나 예술작품을 만들 수 없다.” 또한 유대 언어의 음향적 인상은 “쉭쉭거리고, 윙윙대며, (벌이나 날파리의) 잉잉거림 그리고 투덜거림”이며, 따라서 유대인의 언어에는 순수한 인간적 표현이 결여되어 있고, 그 언어는 “독특한 천박스러운 수다의 썰렁한 하찮음”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바그너는 이 글에서 위와 같이 주장하며, 유대인 음악가 마이어베어(Jacomo Meyerbeer, 1791-1864)와,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Bartholdy, 1809-1847)을 강하게 비난합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음악적 견해 차이 이외에도 바그너 자신의 개인적 경험이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20대 후반의 바그너는 음악감독으로 재직하던 오페라하우스의 파산으로 도망치듯 파리로 거처를 옮기는데, 파리에 도착한 바그너는 당시 파리 오폐라계의 명망있는 작곡가 마이어베어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당시 바그너가 마이어베어에게 보낸 편지를 살펴보면 당시 바그너가 처한 처절한 상황을 짐작하게 해줍니다.

 

 

 

(전략) 제가 이글을 쓰는 이 순간 제가 삶을 계속할 수 있으리라는 최후의 희망이 완전히 닫혀버렸습니다. (중략) 일을 하기 위한 음악과 힘을 얻으려면 제가 심신 양면으로 당신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 노예는 언젠가는 당신에게 감사를 표현할 수 있겠지요. 저는 충실하고 정직한 노예가 되겠습니다. (중략) 그러니 저를 사주십시오, 선생님 절대로 무가치한 구매는 아닐 것입니다.... 당신의 소유물인 리하르트 바그너. 

 

 

편지를 받은 마이어베어는 바그너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돈도 수차례 빌려 주었죠. 하지만 바그너는 마이어베어의 호의가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바그너가 리스트에게 보낸 편지에 바그너의 감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그를 증오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없이 혐오스럽습니다. 이 한없이 친절하고 온화한 사람은 내 생애의 가장 암울하던 시절(가장 극악한 시절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때 그는 나를 보호해주는 척했지요. (중략) 내게 보여준 친절이 실효를 거두지 못 했다고 해서 마이어베어를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도 의도적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말입니다.”

 

 

마이어베어의 경우와 같이, 멘델스존을 향한 바그너의 증오도 개인적인 감정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바그너는 1836년 자신이 존경하던 멘델스존에게 《C장조 교향곡》의 원본 총보를 멘델스존에게 선물로 보냅니다. 

바그너는 자신의 곡이 멘델스존에 의해 연주되기 바랐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고, 심지어 멘델스존은 이 악보를 잃어버립니다. 

 

이러한 개인적 경험으로 바그너는 유대인 음악가, 그리고 유대인을 증오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바그너는 자신의 작품에서 유대인을 조롱하고 희화화하기 시작하죠.

 

 

유대인을 향해 분노를 표현하는 바그너의 행동에서 히틀러의 모습이 보입니다. 유대인을 향한 증오는 1870년대를 살았던 바그너와 1930년대를 살았던 히틀러를 연결하는 중요한 연결고리죠. “반 유대주의”라는 그릇된 신념을 가진 두 사람이, 시대를 넘어 서로 연결된다는 사실이 어찌 보면 필연처럼 보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바그너를 사랑했던 히틀러가 그의 음악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탬버린 뮤직>

 

소개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V29lmdIFdbM&feature=youtu.be&themeRefresh=1

수강신청 : https://tamburinmusic.com/lecture/index

카카오톡 문의 : https://pf.kakao.com/_UPqrb

이메일 문의 : classictal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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